김우영 (1886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김우영(金雨英, 1886년 10월 23일 ~ 1958년 4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법조인이며, 호는 청구(靑邱)입니다. 화가 나혜석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 및 주요 활동:
- 1886년 부산 동래(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출생했습니다.
- 1918년 일본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 1920년 화가 나혜석과 결혼했습니다.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3.1 운동 관련 재판을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 1921년 일본 외무성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만주 안동현(현 중국 단둥)에서 부영사로 근무했습니다.
- 1930년대에는 충청남도 참여관 겸 사업부 사무관, 전라남도 산업부 상공과장 등을 역임하며 관료 생활을 했습니다.
- 1943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습니다.
- 1944년 조선농지개발영단 이사를 지냈습니다.
- 1945년 해방 이후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 1946년 부산으로 이주하여 활동했습니다.
-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 1951년 신생공론사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 1958년 사망했습니다.
나혜석과의 관계:
- 김우영은 첫 번째 부인과 사별 후 1920년 당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과 결혼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 부부는 함께 세계 일주 여행을 하기도 했으나, 여행 중 발생한 최린과의 염문설로 인해 1930년 이혼했습니다.
- 나혜석은 이혼 후 "이혼 고백장"을 발표했습니다.
친일 논란:
-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 행적이 있어, 여러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저서:
- 민족공동생활(民族共同生活)과 도의(道義) (신생공론사, 1957)
김우영 (1886년) | |
---|---|
기본 정보 | |
이름 | 김우영 |
한자 표기 | 金宇英 |
출생 | 1886년 |
사망 | 1958년 |
직업 | 관료, 정치인 |
경력 | |
주요 이력 | 조선총독부 참여관 귀족원 칙선의원 |
친일 활동 | |
분야 | 정치 |
주요 행적 | 일본 기원절 기념행사 참석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평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흥아보국단 결성 참여 |
작위 | |
받은 작위 | 남작 |
수여 기관 | 일본 제국 |
수여 년도 | 1928년 |
가족 관계 | |
아버지 | 김석진 |
자녀 | 4남 3녀 |
친척 | 김사묵, 김종한 |
기타 | |
출신 학교 | 관립한성외국어학교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